죽음의 삭막한 춤에 나는 열광한다. 다만 지금은 보기만 할 뿐, 언젠가는 저 춤을 함께 추고야 말겠다.

 댄스 마카브르Danse Macabre, 죽음의 춤은 중세 말에서 근세 초에 걸쳐 다루어졌던 소재다. 춤추는 ‘죽음’은 썩어가는 시체 이거나 앙상하게 남은 뼈의 모습으로, 모든 계급, 지위, 연령의 산 자와 함께 원을 돌며 춤을 추는데, 춤으로써 망자를 되살릴 수 있다는 속설도 있으나 이때의 춤은 생명을 부여하기보다는 박탈하여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회화에서 묘사된 산 자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억지로 이끌려 죽음과 함께 춤을 추고있다. 죽음이 우리와 가까이 있음을 잊지 말고 삶에 충실 하라는 메멘토 모리memnto mori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유용되었던 소재이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도덕적인 춤들은 아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도덕적, 종교적 메시지가 아니다. 역설이다. 춤이란 생명력의 발산,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에너지를 뿜어내는 움직임이다. 춤을 의미하는 영단어 댄스Dance의 어원은 산스크리트 원어의 탄하Tanha이며 이는 ‘생명의 욕구’를 뜻한다. 또한 중세영어에서는 Daunce(Dawnce)로 표기하는데 이것은 옛 독일어 단손Danson과 연결되며, ‘생활의 경험이나 환희 속에서의 운동이나 활동의 요구, 생명에의 요구’의 의미를 포함한다. 춤이란 인간의 신체를 창조의 수단으로 이용하는데, 인체가 표현하는 리듬Rhythm은 ‘생명의 규칙적인 숨결이자 영혼의 파동’을 나타낸다.

 죽음은 종말이다. 생명은 사라지고 역사는 단절된다. 사망의 기준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죽음은 뇌의 죽음이자 개체의 죽음을 내포하며, ‘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로서 생의 종말을 의미한다. 심장과 뇌, 폐의 기능이 정지하여 심폐사 하면 신체 각부의 남은 세포들이 제 기능을 어느 정도 유지하다 세포사 하게 되는데, 이렇게 완전한 죽음의 단계를 밟고 나면 온기 없는, 온전히 빈 육신이 남는다.
죽음과 춤은 그 속성이 완전히 다르다. 춤추는 죽음은 소재 자체가 역설이다. 죽음은 춤을 출 수 없다. 생명이 다한 껍데기로는 생명의 숨결이나 영혼의 파동을 나타낼 수 없다. 그런데 죽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이후의 수많은 회화와 문학작품들이 죽음이 춤을 춘다고 말한다.

 나의 죽음의 춤에는 산 자에게 공포를 주고자 하지는 않는다. 춤은 춤 그 자체일 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역설 자체일 뿐 삶의 교훈이라던가, 현실의 삶에 충실 하라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를 담고 있지도 않다. 공포가 목적이 아니지만 내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정체를 파악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는 대상이라 공포를 느끼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의 간접적인 경험 때문인데, 그건 꿈을 통한 것이다.

 꽤나 개념에 근거한 작업인 듯 말하다 대관절 꿈을 들먹인다는 것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꿈에서 경험한 몇 번의 죽음이 실제 죽음과 얼마나 유사한지는 알 수 없고, 꿈의 내용조차도 왜곡의 가능성이 있으며 나의 경험담이 실제인지 검증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꿈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감각에 대한 꿈의 영향력을 알기 때문이다. 꿈은 현실에서의 그 어떤 설명 가능한 경험보다도 강렬하다. 동시에 공유할 수 없는 개인의 경험이기에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온전히 개인이 흡수하는 사건이다. 꿈의 구체적은 내용을 밝히는 것은 정확한 기록에 대한 확신이 나조차도 없고, 전달이 불가능한 주관적 경험이기에 하지 않겠다. 다만 그것이 꿈을 통한 것이었음을 알리고 싶었다.

 표현적인 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나의 감정이었다. 10대의 대부분을 우울증에 시달리며 보냈고, 그것은 자연스레 표현의 원천이 되었다. 떨쳐 버리려야 절대 떨어져 나가지 않는 우울함에 몹시 고통스러웠지만, 작업의 결과물에 만족할 때마다 표현의 공급이 보장된 이 증세에 안정을 느끼기도 했다. 늘 끌어다 써오던 우울증이 가장 필요한 이 시기에 사라졌다. 사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를 압박하던 주요한 제약이 사라지자 나는 미친 듯이 달렸고, 새로운 환경과 그 나름의 바쁜 일정을 모두 소화하는데 에는 이성의 판단을 요구했다. 확실히 느낀 것은 감각이든 감정이든 일말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여름 내내 매달리면서 느낀 심정에 대한 기록이 있다.